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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이야기

종이달 (Pale Moon, 2014)

영화 종이달은 일본 작가 가쿠다 미쓰요의 소설 '종이달'을 원작으로 한 작품으로 일본에서 일어난 은행 9억 원 횡령 사건을 기반으로 썼다고 합니다. 영화 종이달은 원작 소설과 마찬가지로 지루하리만큼 평범한 일상을 보내던 리카가 자신이 일하는 은행에서 고객의 돈을 훔쳐 사치를 이어간다는 내용입니다. 영화는 그 과정에서 겪는 주인공의 내면 서사가 중심을 이룹니다. 이러한 소재가 사람들에게 흥미를 주는 탓인지 소설 종이달은 2014년에 이미 일본에서 드라마로 만들어졌으며, 2022년 한국에서도 드라마로 제작되었습니다. 제가 오늘 소개할 작품은 2015년에 개봉한 일본 영화 종이달입니다. 영화 종이달에서 뛰어난 연기력을 선보인 미야자와 리에는 2014년 도쿄 국제영화제와 2015년 일본 아카데미상에서 여우주연상을 수상하는 영광을 누렸습니다.

영화 종이달 포스터
배우 미야자와 리에가 손을 들어 어딘가를 가리키고 있는 영화 종이달 포스터입니다.

리카의 충동성

리카가 처음 손님 돈을 훔친 이유는 어떻게 보면 사소한 일이었습니다. 집으로 가는 길, 백화점에 들른 리카의 눈에 들어온 화장품은 그녀의 눈길을 끌기에 충분했습니다. 거기에 직원의 칭찬까지 더해져 화장품을 사고 싶다는 욕망을 더욱 커집니다. 만약 그녀에게 신용카드가 있었다고 한다면 카드를 긁었을 테지만 그녀에게 신용카드가 없었습니다. 그녀가 가지고 있는 현금은 화장품을 사기에 턱없이 모자랐습니다. 하지만 그녀의 지갑에는 고객의 돈이 있었습니다. 그렇게 리카는 화장품을 사기 위해 손님의 돈을 훔칩니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다시 손님의 돈을 채워 넣습니다. 하지만 리카에게 소비를 재촉하는 눈길을 끄는 물건들은 많았고 그때마다 그녀는 충동성을 제어하지 못합니다. 시작은 사소했으나 점차 리카 자신도 스스로를 제어하지 못하는 지경까지 가고 만 것입니다. 리카가 은행에서 일하지 않았다면 결과는 좀 달라져있을까 라는 생각을 해보았습니다. 하지만 리카가 가진 충동성이 마음에 항상 도사리고 있다면 어떤 형태로든 문제가 되지 않았을까라는 생각에 이르렀습니다. 그녀를 횡령으로 이끈 것은 그녀의 마음이 문제였기 때문입니다.

인정 욕구에 대한 갈망

영화 종이달에서 리카가 걷잡을 수 없는 욕망에 빠진 이유는 충동성 말고도 또 있습니다. 리카 내면에 크게 자리 잡은 사람들에게 인정받고 싶은 욕구가 큰 역할을 했습니다. 처음엔 충동성으로 시작된 리카의 사치는 내연 관계인 코타를 만나면서 점점 더 악화됩니다. 리카에게 사치란 단순히 쾌락을 탐닉하는 것만을 뜻하지 않았습니다. 리카는 내연 관계에 있는 코타에게 마음껏 돈을 쓰면서 관계를 주도하였고 이를 통해 스스로의 존재를 증명하는 듯 보입니다.

리카의 어린 시절 회상씬에서 어린 리카는 단순히 도움을 주기 위해 기부를 하는 것이 아닌 인정받는 것에 희열을 느낍니다. 리카는 어린 시절 학교에서 주최한 모금 활동에 아버지의 돈을 훔쳐서까지 돈을 기부해 자신을 과시하는 데 열을 올리게 됩니다. 학교에 이 사실이 발각돼 모금 중단 사태가 일어났던 적이 있습니다. 그러한 경험이 있는 리카가 은연중 자신을 무시하는 남편과의 관계에서 염증을 느끼고 훔친 돈으로 사치를 부리며 코타와의 관계를 주도하며 희열을 느끼게 됩니다. 이러한 장면에서 리카가 인정 욕구를 다른 건강한 방식으로 충족했다면 큰돈을 횡령을 하지 않았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리카와 요리코의 대화와 나의 견해

영화 종이달에서는 리카와 대비되는 인물이 요리코가 등장합니다. 요리코는 은행에서 25년간 근속한 리카의 직장 상사로 책임감을 가지고 업무에 임하는 성실한 사람입니다. 하지만 요리코는 성실하게 은행에 헌심 했음에도 불구하고 나이가 많다는 이유로 단순한 업무를 하는 부서에 배치되는 부당한 요구를 받게 됩니다. 이는 결국 요리코를 퇴사하게 하려는 회사의 술수라는 것을 요리코는 알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요리코는 자신이 맡은 업무에 소홀하지 않았고 여느 때와 마찬가지로 최선을 다해 일을 합니다. 그러다 은행에서 이루어지는 돈의 흐름에 대한 문제점을 인식하고 결국 리카가 은행 돈을 횡령하고 있다는 사실을 밝혀냅니다. 리카의 횡령 사실이 모두 밝혀진 순간, 리카와 요리코는 묘한 대화를 나눕니다. 리카는 요리코가 자신을 향해 동정 어린 시선을 보내고 있다고 생각했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았습니다. 리카가 횡령한 돈이 얼마인지 기록하기 위해 밤새 확인 작업을 했던 요리코는 비록 잠깐이지만 마음껏 누렸던 리카의 화려한 삶에 대해 진지하게 생각해보았던 것입니다. 요리코는 리카에게 자신의 솔직한 마음을 말하게 되고 리카는 생각지도 못한 말을 하는 요리코를 의아한 눈길로 올려다봅니다.

영화 종이달은 리카와 요리코의 대화를 통해 인간이라면 모두 욕망을 가지고 있다는 사실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종이달은 누구나 욕망을 가지고 있지만 누군가는 리카처럼 행동으로 옮겨서 나쁜 행위를 저지르는 것이고 누군가는 요리코처럼 욕망을 억제하며 평범하게 살고 있는 것이라고 말하는 듯 보입니다. 그에 따른 책임도 행동을 저지른 사람이 감당해야 할 것입니다. 결국 리카는 은행의 유리문을 부수고 도망갑니다. 하지만 과연 그것이 온전한 자유가 될 순 없을 것입니다. 쫓기는 삶이란 그 자체로 감옥에 갇힌 삶이기 때문입니다.